지식채널 e가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관해서 여러 모로 새로운 지식들을 가슴에 와닿게 보여주는 좋은 프로그램인 것은 사실이지만, 간혹 너무 감정에 호소하려고 하는 면이 강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이다보니 연출이 필요한 태생적 한계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요. 복종실험에 관해서 다룬 내용을 보니까 실험 내용에 대한 언급도 적은데다가 조건이 전혀 다른 초록 원숭이 실험과 복종 실험을 수미쌍관법으로 묶어 놓은 것이 마치 '원숭이도 그렇지 않는데 우리 인간은...' 하는 식의 메세지라도 전하려는 건가, 싶어서 별로 마음에 들질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실험의 전후에 관해서, 기존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좀 수정해서 올려볼까 합니다.
이 실험은 여러 심리 실험중에서도 과정 및 결과가 충격적인 탓에 잘 알려진 편이고, 한편으로는 심리실험의 무자비성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밀한 과학적 이야기보다는 '비인간적인 명령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복종하더라' 라는 수준의, 놀라운 세상 서프라이즈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의 수준으로만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험 자체가 워낙 관심을 끌다 보니까 엄청나게 많은 비판이 가해지고 상당한 검증시도와 후속연구들이 이어졌는데 말이죠.
원래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그 이전의 다른 유명한 선행 실험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 역시 상당히 잘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바람잡이들 틈에 진짜 피실험자는 한 명만 두고, 기준이 되는 선분의 길이와 같은 선분을 찾아내는 실험이죠. 이 때 바람잡이들이 전혀 길이가 다른 선분이 길이가 같다고 지목하면, 피실험자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따라하더라는 내용입니다.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도 선행 연구가 있습니다. 세리프의 동조 실험인데, 이 실험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리프의 실험은 정보적 사회동조 현상Informational Social influence에 대한 연구입니다.
피실험자에게 암실 속에서 벽면에 비친 붉은 점을 보게 합니다. 원래 사람의 안구는 3차원 지각을 위해서 계속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배경이 사라져서 뇌가 전체적인 시야를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정지 상태로 비친 레이저포인터의 빛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납니다. 이 현상을 Autokinetic illus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단순히 Autokinetic illusion이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피실험자에게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움직인 것 같냐고 물어봅니다. 혼자 보게하고 어디로 얼마나 움직였냐고 물어보고, 여럿이 보게 하고 어디로 얼마나 움직였냐고 물어보죠.
이 때 원래 점이 움직인 게 아니라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피실험자는 정보가 굉장히 불충분하고 애매한 상황에 처해 있게 됩니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해서 자기 의견을 조정하는 경향이 나타나서, 여럿이 보고 물어봤을 경우 상당히 일정한 방향으로 진술이 모이게 됩니다. 원래는 각자의 안구 운동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무작위적으로 흩어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 실험이 발표되었을 때, 솔로몬 애쉬는 이것만으로 동조가 일어난다고 보기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점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자체가 착시이므로, 정보가 애매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어느 정도 참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설명한, 눈으로 보기에도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길이의 선분들을 두고 기준과 길이가 같은 선분을 골라내는 과제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정확한 실험 절차는 피실험자는 총 8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7명은 실험자가 고용한 바람잡이이고 한명만 진짜 피실험자입니다. 스크린에 기준이 되는 선분과, 비교해야 하는 선분 3개를 비추고 그 가운데 길이가 같은 것을 고르게 합니다. 이 선분들의 길이는 하나는 기준과 같고 나머지 둘은 지나치게 짧거나 지나치게 긴 탓에 잘못 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 첫번째, 두번째 문제까지는 제대로 풀지만 세번째 문제에서 바람잡이들은 미리 정해진대로 모두 같은 오답을 내놓습니다. 이 상황에서 피실험자는 속으로 ????하고 있지만 자기는 분명히 맞는 것 같은데 자기 혼자 엉뚱한 대답을 하면 이상하게 볼까봐 다른 사람들의 대답을 따라합니다. 이 현상을 규범적 사회동조 현상Normaive Social influence라고 부릅니다.
이 때 중요한 건, 잘 알려진 실험들은 굉장히 무수한 변종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제대로 된 실험 하나 내놓으면 그걸로 상당히 오랫동안 먹고 삽니다. 변수를 하나씩 바꿔가면서 계속 논문을 내거든요. 솔로몬 애쉬 역시 어떤 요인이 동조를 강화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추가적인 실험들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 결과 집단의 크기(3~4명인 집단이 최대), 만장일치성(바람잡이 중 단 한 명만 다른 의견을 내도 동조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문화적인 요인(집단적 사고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권이 더 큽니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신뢰가 가게 생겼는가(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었느냐 좀 이상해 보이느냐...) 등등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후속 연구들이 나옵니다.
이 실험에서, 제가 나중에도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만장일치성입니다. 다른 의견을 내는 바람잡이가 반드시 맞는 의견을 낼 필요는 없고, 그냥 다른 바람잡이들과는 다른 오답을 내기만 해도 동조율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맞는 답을 고르는 비율이 늘어나는 겁니다. 이건 사회적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령 헛소리를 한다고 해도, 그러한 반역이 일어날 수 있다는데서 진짜 옳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기 의견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거든요.
이제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으로 넘어가 봅시다. 밀그램은 이런 동조 현상들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끽해야 선분의 길이 따위를 가지고 하는 문제인데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 정도 동조는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려면 좀 화끈하게 해야지, 설마 진짜로 자기 가치가 시험받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동조가 일어나겠어? 라는 가설에서 나온 실험이었습니다. 동조 현상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보려는 실험이었죠. 그리고 그 유명한 복종 실험이 탄생합니다.
이 실험의 내용 자체도 그 충격적인 내용 탓에 꽤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좀 선정적으로 묘사되는 면이 강한 탓에, 전체 실험 절차를 한번 훑고 넘어가겠습니다.
피실험자는 뉴헤이븐 신문의 광고를 통해서 모집되었니다. 예일대 연구소에(장소도 중요합니다) 제 시간에 도착해 보면, 다른 피실험자 한 명이 더 있죠. 흰 실험가운을 입은(이것도 중요합니다) 실험자가 두 피실험자에게 이 실험은 체벌이 학습에 미치는 효과를 측정하는 거라고 설명하고, 두 사람이 제비뽑기를 해서 학습자/교사를 정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 제비는 모두 교사라고 쓰여 있고, 먼저 도착해 있던 피실험자는 실험자가 고용한 바람잡이입니다. 어쨌든 피실험자는 반드시 교사 역할을 뽑게 되어 있고 바람잡이는 종이를 펴보기만 하고 자기가 학습자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한 다음 실험자는 피실험자를 옆방의 '전기충격장치'로 데려가서, 시범적으로 45V 충격을 줍니다. 실제로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지시키기 위한 절차죠. 그렇게 하고 나서 학습자 역의 바람잡이를 옆방의 전기충격장치에 연결해서 앉혀 놓고, 피실험자는 그 옆방으로 다시 돌아와서 설명을 듣습니다. 학습자 역은 간단한 기억 문제를 풀게 되는데, 피실험자는 옆방에서 마이크를 통해 문제를 불러주고 학습자는 답에 해당하는 버튼을 누릅니다. 틀릴 경우 피실험자가 직접 전기충격장치를 작동시켜서 전기충격으로 체벌을 가해야 합니다.(사실 이 장치는 가짜입니다) 이 때 체벌의 '강도'는 15V에서 시작해서, 15V씩 올라가서 총 30단계가 있고 마지막 칸들에는 위험, 만지지 마시오, XXX등의 표시가 되어 있죠. 실험자는 피실험자 뒤에서 실험 장면을 지켜 보고 있으며, 피실험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미리 정해진 네 종류의 말들('실험을 계속 하십시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계속하세요.' 등등)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밀그램은 마지막 단계인 450V까지 가는 사람이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자문을 맡은 다른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도 굉장히 낮은 비율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단계가 올라갈 수록 포기하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날 거라고 보았죠. 그런데 결과는 잘 알려진대로, 450V까지 가는 사람의 비율이 60%에 이르렀습니다. 150V가 선택의 기로였는데, 이 지점에서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450V까지 끝까지 갔습니다. 이 결과가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에, 밀그램은 다시 변수들을 바꿔가면서 후속 실험들을 계속했습니다. 총 15가지 변수를 검토했고 그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요인들을 골라냈습니다.
원래 실험에서는 피실험자와 학습자가 격리되어 있지만, 피실험자가 학습자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변수가 추가될 때마다 복종확률이 떨어졌습니다. 전기 충격을 가할 때마다 학습자 역할의 바람잡이가 비명을 지르고 벽을 두드리면서 자기는 심장병 증세가 있다고 호소하게 했을 때, 피실험자와 학습자가 같은 방에 있을 때, 학습자 역할이 도망치려고 해서 실험자가 피실험자에게 학습자를 전기 충격장치에 찍어 누르고-_-;; 실험을 진행하게 했을 때(신체적 접촉은 상대방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킵니다), 순서대로 점점 복종률이 떨어집니다. 그래도 마지막 경우에도 끝까지 가는 사람은 여전히 30%를 넘습니다. 그리고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경우 복종률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렇게 까지 크게 떨어지지는 않고, 같은 방에 있게 될 경우 크게 떨어집니다.
또, 실험자의 권위에 조작을 가했을 때도 복종률에 변화가 생깁니다. 실험자가 밖에서 전화로 지시하는 경우 급격하게 떨어지고, 실험 참가자를 3명으로 해서(여전히 바람잡이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이 실험자 역할을 하게 했을 때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가장 크게 떨어지는 경우는 실험자가 두 명인데 그 중 한 사람이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실험 중단해야 하지 않냐' 하고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해서 둘이 싸우기 시작하면 450V까지 가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위의 솔로몬 애쉬의 실험에서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동조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역시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복종을 일어나게 하는 권위는 물샐틈 없이 완벽해야 하고, 거꾸로 거기에 대한 아주 작은 반역의 기미라 해도 미미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거죠.
여기서 잠시 굳이 초록원숭이 실험과 복종 실험을 함께 넣은 e채널의 연출에 관해서 말하자면, 초록원숭이 실험은 피험자와 학습자(여기서는 연출이 아닙니다만;)가 바로 붙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복종을 유발하는 권위 자체가 없습니다. 밀그램의 후속 실험들대로라면 모든 복종 변수들을 제거한 후의 실험이죠. 이런 변수 차를 이런 식으로 묘사하고 이런 식으로 비교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고통을 외면하게 하는 그 누구도 없었다'라고 한 줄 넣기는 했지만, 이건 권력에 복종하게 되는 보통 사람들의 성향보다는 복종시키는 권력만 비판하는 문장에 가깝습니다. 차라리 밀그램의 후속 실험들을 쭉 나열해 놓고 서로 비교하는 것이 실험에 관한 가장 정확한 사실을 전달할 뿐 아니라 복종 실험의 가장 중요한 의의 역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책임감과 foot-in-the-door 효과였습니다. 책임감의 변화는 참가자를 3명으로 한 다음, 피실험자는 문제를 불러주기만 하게 하고 다른 한명의 바람잡이가 전기 충격을 주는 역할만 맡는 경우였죠. 또, 피실험자가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 실험자가운데 '이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의 책임은 모두 내가 집니다. 실험을 계속하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 때에는 충격적이게도 450V까지 가는 사람이 95%를 넘어갑니다.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는 겁니다. foot-in-the-door효과는, 이게 처음부터 450V로 시작했더라면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을테지만 15V부터 서서히 올라왔기 때문에 앞의 것은 했으면서 뒤의 것은 안 하는 게 일관적이지 않아 보이는 탓이죠. 이래서 150V를 넘고 나면 거의 대부분이 끝까지 갔던 겁니다.
밀그램의 실험은 스탠퍼드 대학의 교도소 실험만큼이나 그 실험이 드러내는 인간의 무자비함?으로 인해 악명 높고, 심리 실험에 관한 이미지를 깎아먹는-_-;;; 주 공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근래에는 윤리 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실험은 예산도 안 나오고 해봤자 학술지에서도 안 실어주는 탓에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인식이 강하고(흰 가운을 입고 소독냄새 나는 무표정한 안경 너머의 공허한 눈을 지닌 무리들과 같은 이미지 =_=) 이런 실험이 밝혀내는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죠. 인간의 본성이라고 까발려 놓은 것이 너무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내용이니까요. 인간성에 대한 믿음은 이런 식의 실험에 대한 반감을 불러오고,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에 편승해서 이런 실험들은 일종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광기처럼 굉장히 선정적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스탠퍼드 교도소의 실험을 다룬 영화 <엑스페리먼트>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법 합니다. '이런 실험이 나치 치하의 학살극을 정당화시켜준다는거냐!'하고 분개하면서 미친 과학자와 용감한 시민을 대조시키고 '그러나 인간은 잠시 흔들릴지 몰라도 결코 악에 지지는 않아' 하는 훈훈한 결말.
그러나 저는 이런 실험들이 우리의 본성?에 관해서 굉장히 중요한 함의를 던져주고 있고, 실제로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내보여준다는데서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우리의 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진짜로 그렇게 행동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말하고 있죠. 더 나아가 그런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어떤 상황에서 우리 안의 '평범한 악'이 발동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이 일어나고 말도 안되는 참혹한 짓이 가능해지는지 알 수 있다면 역으로 그런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실험에 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은, 피실험자들이 기꺼이 전기충격을 가한 것이 아니라 피실험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굉장히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몇 번이고 주저하면서도 결국에는 실험자의 명령에 복종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선의를 뛰어넘는 복종의 힘, 그 모든 양심의 가책과 고뇌와 공감과 고통보다도 더욱 강한 악이 결과적으로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악을 단순히 '좋은 사과 궤짝 속의 썩은 사과'로 치부하고 어떤 특별한 사이코패쓰같은 비인간적인 괴물만의 특성이며 그런 종류의 특별한 인간들을 제거해버리면 악은 사라지고 우리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라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고만 말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악의 가능성을 특정한 희생양들 속으로 몰아넣어 버린 다음 이상적인 선의 가면을 뒤집어 쓰는 행위입니다. 심리학이 인간의 본성이 반드시 악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계속 '우리는 원래 선한 존재이다'라고 되뇌이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이러한 종류의 악이 또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악이 반복되리라는 점을 경고하는 것이죠. 이런 시각에서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규칙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 패턴에 대한 탐구는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