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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이 전하는 노르웨이 총격 참상

by 비지 posted Jul 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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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무대가 된 노르웨이 오슬로 북부 우토야 섬. /AP·연합뉴스

노르웨이 오슬로 정부 청사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진 직후인 22일 오후 3시쯤 폭탄 테러 현장에서 35km 정도 떨어진 우토야(Utoya)섬.

키 183cm의 건장한 체구를 지닌 금발의 30대 백인 경찰관이 길이 500m 가량의 이 조그만 섬에 발을 내디뎠다. 육지와 연결되는 교량이 없어 배를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는 고립된 이 호수 위 섬에서는, 집권 노동당이 개최한 청소년 정치 캠프가 열려 700여명의 청소년이 모여 있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14~19세였다.

캠프장에 들어선 경찰관은 노르웨이 원어민 발음으로 “정부 청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와 관련해 검문을 나왔다”고 말한 뒤 주변의 학생을 손짓으로 불러모았다.

노르웨이 테러사건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 /출처=뉴욕타임스

당시 이 남자와 150m 거리에 떨어져 있었던 한 16세 소년은 "인상 좋게 생긴 평범한 경관이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6~7명의 청소년이 다가오자 경찰관은 자신이 들고 온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순간 가방 틈새에서는 무기로 보이는 금속성 물체가 번득였다.

가방에서 나온 남자의 손에는 자동소총이 들려 있었다. 그는 총으로 앞에 있는 10대를 겨냥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세 발을 발사했다. 몇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 때, 그는 “이건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섬은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남자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일부는 그 자리에 죽은 척 엎드렸지만, 남자은 손에 든 총을 산탄총으로 바꾼 뒤 엎드린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며 머리에 총을 쐈다.

사람들은 물속으로 뛰어들어 500m가량 떨어진 육지나 섬의 다른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쳐 탈출을 시도하거나 일부는 언덕이나 나무 위 또는 바위에 몸을 숨겼다.

남자는 이런 아비규환 속을 유유히 걸어다니며 잇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달아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총격을 가했다.

헤엄쳐 섬을 탈출한 한 소녀는 “그는 너무나 침착했어요, 기괴할 정도로요”라며 “확신에 찬 태도로 천천히 섬을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총을 쐈다”고 현지 방송에 말했다.

학살이 벌어진 우토야 섬에서 희생자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목격자 엘리스(15)는 “총성을 듣고 건물을 나와보니 경찰관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 그가 학생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 사람은 먼저 섬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고 나중에는 (총격을 피해) 물로 뛰어든 사람들을 향해 쐈다”고 말했다.

캠프 참가자 에밀리 버르사스(19)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인근 학교 건물을 향해 뛰어간 뒤 탁자 아래로 숨었다. 그는 “여러 방향에서 총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고, 같은 건물 옆방에서도 비명이 들렸다”며 “누군가 탁자 아래로 피하라고 말해줬고, 나는 탁자에 들어가 매트리스와 베개를 뒤집어썼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끔찍했다”고 말했다.

호수 주위에 사는 한 주민은 “50여명이 육지로 헤엄쳐오는 모습을 봤다”며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말했다.

우토야 섬에서의 대학살 소식은 이내 경찰에 전해졌지만, 외딴 섬에서 벌어진 일이라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

총리는 현지 TV 방송을 통해 “우토야 섬에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렸다.

경찰 특공대가 섬에 투입된 것은 총격이 시작된 지 약 30분 뒤. 거의 동시에 앰뷸런스 헬기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아래쪽에서 총격이 계속되면서 착륙은 지연됐다.

이후 경찰복을 입고 있던 범인은 체포됐다.

건물에 숨어 있던 에밀리는 두 시간 뒤, 경찰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일은 미국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알았고, 내 나라 노르웨이에서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생존자는 "그 남자는 한때 내 20~30m 거리 앞까지 다가왔었다. 공포가 밀려오자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현지 경찰은 우토야 섬에서만 최소 80여명이 숨졌으며, 호수에 뛰어들었다 익사한 사람도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23/20110723006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