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잘들 지내셨나요.
지난 2주 간 과자의 유혹을 뿌리치며 잘 견디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칼럼 쓸 과자만 먹자, 칼럼 쓸 과자만 먹자”를 되뇌며 평소보다는 과자를 적게 먹는 것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짝짝짝...(자랑할 일이 이런 것 밖에 없는 건 안자랑)
간단한 소개글이었던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는 태양의 맛을 꿈꾸는(?) 과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바로 오리온의 “태양의 맛! 썬 오리지널”과 롯데(&프리토-레이)의 “썬칩 오리지널”입니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썬칩은 오리온에서 생산하는 과자였습니다. 그 때는 치토스, 도리토스 등도 모두 오리온의 이름을 달고서는 과자코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 12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해내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치토스가...나의 치토스가 이제는 투니스라니...”
이 충격이 더 컸던 건 귀여운 체스터는 온데간데 없고 왠 눈알과 신발, 결혼식장에서나 쓸법 한 하얀 장갑만 덩그라니 남아있는 포장지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이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러한 사건은 오리온이 프리토-레이사와의 제휴관계를 청산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kct1012/90011889984 참고). 그리고는 몇 년이 지나 프리토-레이 사와 롯데가 제휴관계를 맺게 되면서 다시 치토스가 국내시장에서 판매되게 되었습니다. 투니스가 원래 치토스였는데 원래 치토스가 다시 돌아와 투니스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생의 내가 무덤을 박차고 튀어나와 현생의 나와 조우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요?
이러한 연유로 인해 그 놈이 그 놈 같은 썬칩과 썬도 동시대를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이 두 과자를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치토스와 투니스를 비교해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두 과자는 이름이 그리 안비슷해서 호기심을 좀 덜 자극하는 것 같기도 할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이후로는 치토스에 대한 관심이 좀 떨어져서 별로 안 궁금하기도 하고 뭐 그런 이유에서 이름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비슷한 썬과 썬칩을 비교하려고 합니다. 이제 두 과자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한 뒤(①) 외형(②), 씹는 맛(③), 양념 맛(④)의 세 가지 항목에서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기본 사항
-분류
: 썬칩은 양념이 덕지덕지한 과자의 일종으로 강한 맛을 내며 아작아작 씹어먹는 느낌이 일품입니다. 무슨 태양의 맛이 어떻게 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태양의 맛이 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특히 오리온의 경우에 그러합니다).
-포장
: 각 제품의 포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양의 맛! 썬 오리지널”과 “썬칩 오리지널”; 출처: 각 사 홈페이지, 아이포인트몰>
전면에 대해서는 제가 이야기할 만한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는 썬의 포장이 더 예뻐 보이네요).
<두 과자의 앞면>
해바라기의 존재감이 이정도라면 그냥 해바라기맛 과자를 만드는 것이 나을지도..
-제품 설명
<“썬칩 오리지널”의 뒷면>
이쪽에서는 과자에 사용한 곡물들이 태양의 기운을 받고 자랐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태양의 맛! 썬 오리지널”의 뒷면>
이쪽에서는 태양의 힘을 통해 만들어진 과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빨리 원자력칩이나 석탄칩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애초에 태양의 맛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굳이 “이것이 태양의 맛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니까 우리가 진짜 태양의 맛이다.”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오리온은 “썬칩”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게 되면서 원조의 느낌을 잃는 것이 두려웠나봅니다.
<태양의 맛; 홍대 벽화>
뭐 이런 게 태양의 맛일까요..
-제품 정보
<제품 정보>
열량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영양성분에도 큰 차이는 없지만 썬에는 약간의 식이섬유가 포함되어 있으며 썬칩에 비해 나트륨 함량량이 적습니다.
②외형
<외형 비교>
왼쪽부터 “태양의 맛! 썬 오리지널” , “태양의 맛! 썬 스위트어니언”, “썬칩 오리지널”
뭔가 비슷한듯 하면서도 사뭇 다른 생김새입니다. 기본적으로 오리온의 경우가 과자의 길이가 길고 파장은 짧습니다. 스위트어니언 맛의 경우에는 좀 더 연한색입니다.
<두께비교>
위: “태양의 맛! 썬 오리지널”, 아래: “썬칩 오리지널”
두께는 오리온의 경우가 더 얇습니다.
기본정보만을 고려했을 때, 두 과자 사이에는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롯데와플”과 “버터와플”에 비하면 꽤나 많이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③씹는 맛*
기본적으로 두 과자는 바삭한 맛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와작와작 씹어먹는 맛이 참 좋은 과자들입니다. 하지만 두 과자의 서로 다른 두께 만큼이나 고유의 바삭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단 썬칩의 경우에는 상당한 부피감이 있습니다. 켈로그(농심)의 스페셜K에서 느낄 수 있는 부피감과 비슷합니다. 반면 썬은 콘푸레이크처럼 얇은 느낌입니다(초록색 닭 그림이 그려져있는). 썬칩을 씹어먹고 있노라면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이빨로 긁어먹는 느낌이지만, 썬은 얇은 얼음이 부셔지는 느낌입니다. 썬칩은 두께가 좀 있다보니 사가각, 사가각 갈리는 느낌이지만 썬은 얇다보니 입안에서 과자가 깨지는 느낌입니다. 다른 과자의 씹는 맛과 비교해보자면 썬칩은 새우깡을 씹는 맛에 가깝고, 썬은 고래밥을 씹는 맛에 가깝습니다. 새우깡은 이빨에 갈려서 나뉘게 되지만 고래밥은 입안에서 터지고 깨지는 느낌입니다. 썬칩을 먹을 때는 치아가 톱이 되어 과자를 가는 느낌이지만, 썬을 먹을 때는 이빨이 망치가 되어 과자를 부수고, 깨는 느낌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항목 | 썬칩 | 썬 |
씨리얼 | 스페셜 K | 콘푸레이크 |
빙과류 | 아이스크림 | 얇은 얼음 |
과자 | 새우깡 | 고래밥 |
의성어 | 사각사각 | 아작아작 |
이빨의 역할 | 톱 | 망치 |
또 한가지 다른 점은 입안에서의 잔류감입니다. 썬의 맛이 그리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입 안에 태양 찌끄러기가 남는 것인지 뭔가가 자꾸 남습니다. 아마 앞서 외형사진에서 보였던 과자 구석구석 박혀있는 검은 무엇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썬칩에도 이러한 것이 있었지만 썬의 경우에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트밀 씨리얼을 먹을 때의 그 느낌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썬칩의 경우가 더 깔끔한 맛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검은 그 무엇>
④양념 맛
양념의 맛은 썬 오리지널이 가장 강하며 그 다음은 썬 스위트어니언인 것 같습니다. 썬칩은 양념의 맛을 논하기엔 약간 밍밍한 느낌마져 납니다. 썬칩을 처음 몇 조각 먹을때는 “아..이게 정말 내가 아까 사온 그 시뻘건 봉지에 들어있는 과자가 맞나...”싶을 정도로 밍밍한 맛을 냅니다. 하지만 먹다보면 왠지모를 약간의 매운맛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리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반면 썬 오리지널은 첫 조각부터 아주 짭짤한 양념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도한 나쵸나 오감자에서 느껴지는 정도의 “양념의 덕지덕지함”을 느낄 수는 없지만 무언가 짭짤하면서 매콤한 것 같은 양념의 맛은 충분히 강합니다. 물론 썬 스위트어니언의 경우에도 양념의 맛이 제법 느껴지긴 하지만, 달고 짠 건 알겠는데 어디가 어니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양파맛이 아니라 마늘맛으로 해서 좀 진한 풍미를 제공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그냥 제가 마늘맛을 좋아해서..). 이렇게 봤을 때 짭짤한 양념의 맛을 선호한다면 썬 오리지널이, 자극적인 양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약간의 매운맛을 원하는 경우에는 썬칩 오리지널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입 세척용 두유>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과자 맛을 볼 때 우유로 입을 헹군다는 것을 읽었는데 집에 우유가 다 떨어져서...
썬 스위트어니언의 경우에는 조금 애매합니다. 뭔가 달짝찌근한 맛이 나기는 하는데, 이런 맛이라면 “대단한 나쵸”를 먹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대단한 나쵸는 확실히 달짝찌근한 맛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스위트어니언’ 같은 딱지도 붙어있지 않기 때문에 먹으면서 “으응..내 양파맛은 어디간거지?”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좋습니다.
이래저래 살펴보고 나니 두 과자는 사뭇 다른 과자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씹는 맛도, 양념의 맛도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과자 중에 무엇이 더 태양의 맛에 가까운지를 판단해야 한다면 여기서는 썬에 더 후한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사각사각 갈리는 느낌보다는 깨지고, 부셔지는 맛이 더 시원시원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새우가 먹고 싶다고 새우깡을 찾지는 않는 것처럼 태양의 맛을 보기 위해 썬/썬칩을 먹을 일은 거의 없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자신이 선호하는 씹는 맛, 양념 맛을 고려해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비슷한 과자를 출시하는 것에는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이렇게 차이가 난다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씹는 맛을 통해 기쁨을 선사해주는 과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부디 다음에 만나는 날까지 과자의 유혹을 잘 뿌리쳐낼 수 있도록..
*이 부분에서는 두 태양과자의 차이점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교는 두 과자의 상대적 차이를 나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