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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는 손을 가리켜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라고 했다. 우리가 뇌의 명령을 받아 행하는 일 중에 손이 가장 다양하고 많은 일을 처리한다. 심지어 우리의 손은 사물을 만지며 알아채 보는 눈의 역할을 대신하고, 손짓으로 말하는 입을 대신하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손은 단순한 몸의 한 기관 이상이다.

인간이 지금의 문명을 이룬 것도 손을 자유롭게 쓰면서부터다. 과학과 예술의 혼은 뇌에서 나올지언정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바로 손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손이 이처럼 ‘제 2의 뇌’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손은 인체 기관 중 가장 많은 뼈로 구성돼 있다. 사람의 뼈의 총 개수는 206개, 이 중 양손이 차지하는 뼈의 개수는 무려 54개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한’ 기관에 우리 몸 전체 뼈의 25%가 들어있다는 말이다. 손은 14개의 손가락뼈, 5개의 손바닥뼈, 8개의 손목뼈로 구성돼 자유자재로 또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 뿐 아니다. 손은 우리 몸에서 가장 감각점이 발달한 기관이다. 특히 손가락 끝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손끝으로 미묘한 차이를 감지해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가락 감각은 세계적으로도 특별해서 병아리 감별, 위조지폐 감별 같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의 손이 문명을 이끈 것처럼 동물의 손(원숭이와 같은 동물의 앞발을 손이라고 한다면)과 다른 차원에 두는 결정적 차이는 바로 엄지손가락이다. 독일 해부학자 알비누스는 엄지손가락을 ‘또 하나의 작은 손’이라고 했다. 아이작 뉴턴도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고 칭송했다.

과학자들이 이렇게 엄지손가락을 칭송한 이유는 사람의 엄지손가락이 나머지 4개 손가락과 맞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침팬지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가까스로 붙일 수 있지만, 엄지손가락이 짧아 매우 불안정하게 물건을 쥘 수 있을 뿐이다.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붙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엄지손가락을 봉인하고 지내보라. 물건을 집고, 연필을 쥐고, 가위질을 하고, 신발끈을 묶는 등 모든 일상생활이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네 손가락의 끝과 안정적으로 붙일 수 있는 엄지손가락의 탄생으로 인류는 수많은 문명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손에 있는 지문은 섬세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손의 마지막 장치다. 지문이 있기 때문에 손은 적당한 마찰력을 갖게 됐다. 따라서 물건을 집거나 도구를 사용할 때 보다 안정적인 작업이 가능하다. 또 지문으로 손의 표면적은 훨씬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감각점의 수를 늘려 더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지문은 사람을 구별하는 고유한 식별 코드 역할을 한다. 지문은 영장류와 사람에만 있는데, 사람의 지문이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복잡하다. 지문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며, 일생동안 변하지 않는다. 겉모습과 유전자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도 지문만큼은 서로 다르다. 이는 지문이 태아의 발생 과정에서 ‘볼라패드’(volar pad)라 불리는 판이 자랐다가 피부로 흡수되면서 무작위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흔히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말을 한다. 몸 중에 땀이 나는 곳이 많은데 왜 굳이 손을 언급했을까? 이 표현이 사용될 때는 더울 때보다는 긴장했을 때다. 우리 몸에 땀샘이 많지만, 손바닥과 발바닥은 땀샘이 가장 많이 분포한다. 게다가 긴장, 스트레스 등 정신적인 이유로 생기는 땀은 손바닥, 발바닥, 겨드랑이에서만 난다고 한다. 발바닥과 겨드랑이야 축축해져도 인지하기가 쉽지 않지만, 손바닥은 긴장하면 자연스럽게 손을 쥐게 돼 땀이 흥건하게 고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이로 인해 생긴 말이 아니겠는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뇌의 역할이 가장 크겠지만, 손은 ‘제 2의 뇌’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기관이다. 손에 적당한 마사지만 해도 몸의 피로를 푸는데 효과 만점이라고 하니 잠시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손 운동을 해주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글 : 김정훈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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