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순 교수의 독백
미국인들과 공부하면서 또 한가지 감탄한 것은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이들은 생각이 자유롭고 의사표현도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그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론과도 연결을 시켜보곤 한다. 그러는 가운데 정말 획기적인 발견이 나온다.
199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지금 KAIST(한국과학기술원) 총장으로 와있는 로버트 러플린 교수는 매사추세츠공대(MIT)과 벨연구소의 선배였다. 보통 전자는 원자내에서 고정된 특성을 늘 유지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는 전자의 성질이 때로는 전자 자신도 모르게 좀더 광범위한 영역의 지배를 받아 달라진다는 이론을 세웠다.
이것은 입자물리학의 이론을 고체물리학에 대입해본 획기적인 발상이어서 진부한 생각으로 문제를 풀려던 과학자들을 부끄럽게 했던 대발견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도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르는 것은 물어보라고 강조한다. 학문은 예술과 같아서 독창성이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기왕의 것을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기만의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중요하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과학자나 대학생들은 이런 면에서 대담한 독창성이 부족함을 절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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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11>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임지순
공부는 교수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왜 하느냐고 묻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것이 공부냐에 대해서는 교수들조차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해는 1970년이었다. 문리대를 다니면서 나는 사람들이 보통 공부라고 말하는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다. 학교는 계엄령과 위수령과 유신을 겪으면서 휴교중인 때가 많았고 학생들은 나라의 장래와 학생들의 의무에 대해서 늘 토론중이었다. 덕분에 나는 물리학이나 고급수학을 깊이 배울 기회는 없었고 소설과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소설책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교육열이 강한 분이셨지만 과외 같은 것으로 선행학습을 시키지는 전혀 않으셨다. 오히려 세계문학전집 같은 것을 집에 구비해놓고 책 읽는 것을 즐기게 하셨다.
물리학이라는 것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우주나 천체, 기계와 운동 같은 과학의 원리에 관심이 많이 쏠렸다.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의 지적인 희열감을 물리과목에서 많이 느꼈다. 진득하게 혼자서 생각하기를 즐기는 성격도 물리학이라는 학문과는 맞는듯했다.
다른 공부도 그렇지만 물리학은 즐거워서 하고 늘 끈기있게 해야 하는 것이지 성과를 빨리 기대하면 잘 해내기가 힘들다. 그런 점에서 어려서부터 내가 하는 것을 믿고 진득하게 해낼 수 있도록 길러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드린다.
대학에 가서 전공 공부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조급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를 아끼던 교수님께 걱정을 많이 끼쳐드렸다.
다행히 물리학의 명문 중 하나인 미국의 버클리 대학에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버클리는 주립대학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이들에게 맞춰서 기초부터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한국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물리학의 기초를 1~2년 동안 여기에서 다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는 전문분야로 들어갔는데 이때 나는 대학교가 휴교한 덕분에 다양한 종류의 책에 몰두했던 덕을 톡톡이 봤다.
첨단과학일수록 그동안 축적된 학문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상력을 갖고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축적된 학문을 좇아가는 것은 공부라고 하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사물을 볼 줄 아는 능력은 학교에서 공부로 잘 쳐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나중에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기현상이 생겨난다. 자기만의 엉뚱한 사고, 독창적인 사고가 그동안 축적된 이론과 맞물릴 때(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축적된 이론을 배우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독창적인 사고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물을 접하고 자기의 전공과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놀람과 즐거움을 여러 분야에서 맛보면서 자연스레 싹트는 것이다.
축적된 학문을 다 익힌 상태에서 공부(혹은 연구)는 두 가지 경로를 거쳐 비약을 한다. 하나는 혼자서 생각하는 것이다. 흔히 공부나 연구라고 하면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쓰는 걸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공부의 극히 일부이다.
오히려 혼자서 질기게 생각하는 것이 과학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방법은 지하철에서든 연구실에서든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있고 때로는 칠판에 수식을 써보기도 하는 등 다양하겠지만 혼자서 생각하는 과정없이 공부란 없다.
그리고 두번째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미국이 물리학의 중심이 된 것은 바로 이 두번째 여건이 잘 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연구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대화는 더욱 풍부해지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각 개인들?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에서 해답을 얻곤 한다. 탄소나노튜브의 반도체적 특성을 밝혀낸 97년의 연구도 버클리대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 그곳 연구팀과의 합동 연구로 이뤄진 것이었다.
지금은 벨연구소가 기초과학 분야를 별로 다루지 않지만 내가 박사학위 후에 연구원을 하던 시절에 벨연구소가 1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그 이전에 이미 배출하였고 당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인접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많이 모여서 모든 분야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단기간에 따라갈 수 없는 것도 시설이나 자금에서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바로 이런 수준 높은 연구진의 수가 많지 않고 이 때문에 그들과 토론하면서 누리는 상호작용의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처음에 미국에 갔을 때는 이런 토론식 수업에 익숙하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축적된 학문을 익히는 체계적인 공부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직관적인 아이디어라는 것도 실은 체계적인 학문을 바탕으로 나온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분야에서 축적된 학문을 익히는 것은 공부라고 강조하는 반면 다양한 분야에서 체험을 하는 것은 소홀히 하고 있기에 이렇게 강조하는 것이다.
미국인들과 공부하면서 또 한가지 감탄한 것은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이들은 생각이 자유롭고 의사표현도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그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론과도 연결을 시켜보곤 한다. 그러는 가운데 정말 획기적인 발견이 나온다.
199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지금 KAIST(한국과학기술원) 총장으로 와있는 로버트 러플린 교수는 매사추세츠공대(MIT)과 벨연구소의 선배였다. 보통 전자는 원자내에서 고정된 특성을 늘 유지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는 전자의 성질이 때로는 전자 자신도 모르게 좀더 광범위한 영역의 지배를 받아 달라진다는 이론을 세웠다.
이것은 입자물리학의 이론을 고체물리학에 대입해본 획기적인 발상이어서 진부한 생각으로 문제를 풀려던 과학자들을 부끄럽게 했던 대발견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도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르는 것은 물어보라고 강조한다. 학문은 예술과 같아서 독창성이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기왕의 것을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기만의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중요하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과학자나 대학생들은 이런 면에서 대담한 독창성이 부족함을 절감하곤 한다.
나는 반도체물리학을 전공해서 96년부터 탄소나노튜브의 성질을 연구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의 여러 특성을 활용하면 현재의 실리콘 반도체보다 집적도가 1만배나 높은 새로운 반도체가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되어 새로운 제안을 했고 미국 등지에서 특허도 받았다.
그리고 작은 전자총 다발로 쓸 경우 현재의 LCD, PDP보다 더 얇고 가벼우며 에너지 소비가 거의 없는 차세대 텔레비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최근 들어서 나노물리학은 화학과 생물학에도 접목되고 있다. 나노기술을 이용한 수소저장에 대해서 연구중인가 하면 단백질이나 유전자 같은 생체내의 분자를 반도체 소자로 개발하는 것도 연구가 되고 있다.
생체 분자와 나노기술이 잘 결합하면 극미세 의학도구를 만들어 인체내로 흘려보내 수술을 하는 것도 가능하며 생체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인공장기를 만들어 이식함으로써 장애를 극복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연구를 위해 요즘 화학자와 생물학자와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시 실감하는 것은 서울대에도 더 많은 연구자들이 몰려든다면 더욱 발전적인 대화가 이뤄질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즐거운 것은 첫째 그것이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한다는 것이고 둘째 과학기술의 발전이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학문이든 그것이 사회를 떠나서는 존립할 수도 없고 존립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 인류를 위해, 세상을 위해 보탬이 되는 학문이기에 학문은 학문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도 지금 하는 연구가 마음에 든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면서 생활에 어려움이 없는 교수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 임지순 교수는…
나노소재기술(1mm의 10억분의 1수준에서 물체를 만드는 초미세술) 분야에서 한국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인공. 탄소나노튜브를 다발로 묶으면 반도체가 된다는 사실을 96년 처음으로 밝혀내고 그 응용에 힘쓰고 있다.
1951년 부산에서 출생, 서울에서 성장했다. 70년 대학입학 예비고사 전국 수석, 이어 서울대에 수석합격한 수재. 그러나 경기고 재학 시절에 3선 개헌 반대시위를 준비하다 정학을 당했을 정도로 사회운동에도 열심이었다. 탄소반도체 특허에 대한 기술을 98년 LG반도체(현 하이닉스)에 무상으로 양도한 것도 이 같은 사회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포스트닥 과정을 마치고 벨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86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http://blog.naver.com/kirkus/120013429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