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초반의 남학우이다. 한 달쯤 전에 겪었던 일을 말하려고 한다.
오밤중에 할 짓은 없고 심심해서 가가라이브 랜덤채팅에 접속했다. 늘 하던대로 시시껄렁한 대화들을 몇 상대와 지껄이고 나서 창을 끄려다가, 한 사람과만 더 하고 자려고 했다. 그런데 상대는 이렇게 말했다.
낯선 상대: 더 이상 이 세상을 살기 싫습니다. 같이 죽으실 분을 구합니다. 장난은 사절합니다.
이게 뭐지? 낚시인가? 그냥 무시하고 창을 끄려다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간단하게 소개했다. 상대는 20살의 여자 재수생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 낯선 상대는 어릴때부터 겪어온 따돌림, 입시를 준비하는 현재의 암울한 상황 등을 이야기하며, 죽기 위해 여러번 자살을 시도해 보았으나 번번히 실패했다며 같이 죽을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감이 왔다. 이건 절대 장난이 아니다. 진짜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낚시라 생각하고 애써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고, 최선을 다해 말려보는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우선, 내 성격에 이런 건 절대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내가 무시하고 지나갔다가 이 사람이 정말로 자살하겠다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래서 같이 죽는다면?
게다가 내가 애써 말린다고 해도, 고작 몇 마디 채팅으로 마음을 바꿀 것 같았으면 이 사람은 애초에 이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도 3년 전 자살충동을 가까스로 딛고 일어선 적이 있었던 터라 잘 기억하고 있다.
자살하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를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의 충고가 절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나와 같은 편이 되기에는 너무나 행복한, 그래서 영원히 남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그 아이와 같은 편이 되어 보기로. 그리고 말했다.
"사실은..... 저도 마찬가지예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같이 세상을 떠날 사람을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매우 실감나게 자살을 결심한 듯이 연기했고, 그 사람은 점점 내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물론 연기이긴 했지만, 내가 완전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자살을 결심했던 3년 전의 가장 비참했던 순간을, 다시는 끄집어 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마치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인 듯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는 네이트온 주소를 교환하고, 매우 구체적인 자살 방법, 장소 등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죽음을 준비해 갔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은, 진짜로 죽고싶은 사람을 만날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우리는 '자살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 1주일 후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 역시 낚시였나? 아니었다. 그 사람은 그 장소에 일찍 나왔다가 날 만나면 정말 죽게 될까봐 무서워서 약속시간 5분 전에 도망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약속장소 앞 벤치에 앉아있던 사람들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내가 본 모습과 똑같았다. 낚시이건 아니건, 약속장소에 나오긴 나왔던 거로구나. 이 사람은 정말로 죽기는 너무 무서웠다며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나는 정말로 죽지 않아도 괜찮으니,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해 보자고 말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나도 낚시라고 생각했겠지만.....
2주 전, 그 사람을 결국 만났다. 약속장소에 나온 그 사람은 쭈삣쭈삣거리며 인사를 했다. 수수한 차림에 피곤에 찌든 그리고 약간 긴장된 얼굴의 스무 살 아가씨였다. 커피 두 잔을 사서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한 마디도 잘 못하던 그 사람은 내가 말을 붙이며 분위기를 풀어 주자 1시간에 걸쳐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마치 취객이 바닥에 구토를 하듯 남김없이 다 털어내었다.
사실은 당신의 자살을 말리고 싶었다면서 본심을 털어 놓았고, 이 사람도 아주 살짝 어느 정도 이 사람이 나를 말리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나타나서 좋았다고 했다. 분위기는 점점 부드러워졌고, 나중에 작별 인사를 할 때쯤엔 그 굳어있던 사람이 내 농담 한 마디 한 마디에 깔깔깔 웃기까지 했다.
그 사람을 데리고 근처 여기 저기를 구경다니며 멋진 경치들을 보여주었다. 조금이라도 삶의 미련을 잡으라는 뜻에서. 헤어질 때 그 사람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린 것을 보았다. 요즘도 3~4일에 한 번씩은 그 사람과 연락을 주고 받는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것일까? 쓸데없는 오지랖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내 행동이 자랑스럽다. 스누라이프에 자살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 왔을때 그 글에 자살을 말리는 리플을 달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다는 리플이 이 사람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을 텐데. 그래서 나는 다음에 또 어떤 사람이 자살을 생각한다면, 내가 뭔가 직접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랬다. 나에게 이번에 그런 기회가 온 것이고, 나는 항상 생각해 오던 바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 생각한다.
http://www.snulife.com/gongsage/15472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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